신용카드는 우리가 돈 쓰는 방식을 어떻게 바꿨나? 


** 본 글은 2017년 영국 BBC 기사를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


신용카드는 바로 그 이름에 실마리가 있다. 신용. 믿음, 신뢰를 뜻하는 단어다.


만약 당신이 상점 주인이라면 누구를 믿고 외상을 주겠는가?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만 믿었다. 별 문제될 일은 없었다. 왜냐면 당신이 마주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상황은 보다 곤란하게 변했다.


대형 백화점은 직원들이 매번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을 알아보길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통업자들은 믿을 수 있는 고객들에게 징표를 나눠줬다. 특별한 모양의 동전이나 열쇠고리도 있었고 심지어 1928년에는 군대의 인식표와 비슷하게 생긴 '차저 플레이트'라는 것도 나왔다.



이런 징표 중 하나를 보여주면 개인적으로 당신을 알지 못하는 점원도 당신이 아직 대금을 치르지 않은 물건을 한보따리 들고 상점을 나갈 수 있게 해줬다. 이런 신용 징표들은 곧 신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1947년에는 단 하나의 상점이 아닌 여러개의 상점에서 신용으로 대금을 치를 수 있게 하는 '차짓'이란 징표가 등장했다. 물론 이것은 뉴욕 브루클린의 두 개 블록 안에 있는 상점들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다 1949년, 여행하는 영업사원들을 겨냥한 다이너스클럽 카드가 등장했다.


다이너스클럽 카드가 있으면 미국 전역의 가맹점에서 음식을 사고 기름을 넣고, 호텔 방 값을 내고 고객을 접대할 수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첫 해에 3만5천 명이 가입했고 다이너스클럽은 호텔, 항공사, 주유소, 렌트카 업체들을 열심히 가맹점으로 유치했다. 1950년대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등장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창의성 넘치는 이름이 붙은) '뱅크아메리카드'는 나중에 비자가 됐고 그 라이벌이던 마스터차지는 나중에 마스터카드가 된다.


그러나 초기의 신용카드에는 중대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였다. 소매업자들은 소비자의 수요가 충분히 많아야 카드를 받기 시작할 것이었다. 반면 소비자들은 많은 소매업자들이 카드를 받아야 가입을 할 것이었다. 이러한 교착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958년 플라스틱으로 만든 신용카드를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 사는 모든 고객들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실험을 했다. 총 6만 명이었다. 각각의 카드는 500달러 가량의 신용한도를 갖고 있었다.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따져보면 5000달러(한화 약 550만 원)에 가깝다.


이 대담한 기획은 나중에 '프레스노 드롭'으로 일컬어진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물론 연체와 우편함에서 신용카드를 훔친 범죄자들의 사기행각 등으로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곧 경쟁자들도 이를 따라했다. 은행들은 손실을 감수했고 1960년말이 되자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백만 개의 신용카드를 유통시키게 됐다.



다른 문제는 불편함이었다. 신용카드를 꺼내면 거래를 승인시키기 위해 점원이 당신의 은행에 전화를 걸어 창구 직원과 통화를 해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돈 쓰기가 훨씬 쉬워졌다. 가장 주요한 것은 마그네틱 띠였다. 처음에는 CIA의 신분증에 사용할 용도로 1960년대 초 포레스트와 도로테아 패리가 개발한 것이었다. 포레스트는 IBM의 엔지니어였는데 하루는 플라스틱 카드와 정보가 담긴 마그네틱 테이프를 갖고 집에 와 이것을 어떻게 부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부인 도로테아는 마침 다림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다리미를 건네주며 써보라고 했다. IBM은 1960년대 말 마그네틱 띠를 두른 두 장의 시제품 카드를 만들었다. 열과 압력의 조합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렇게 마그네틱 띠가 탄생했다. 마그네틱 띠 덕택에 당신은 상점에서 비자 카드를 긁을 수 있다. 상점은 그 정보를 은행에 보내고 은행은 그 정보를 비자 네트워크 컴퓨터에 보낸다. 그리고 비자의 컴퓨터는 당신의 은행에 메시지를 보낸다.


문화적 변화


당신이 대금을 결제하리라고 은행이 의심하지 않는다면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디지털로 된 오케이 사인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상점으로 들어가고, 상점은 영수증을 발행해 준다. 당신은 물건을 들고 상점을 나서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단 몇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신용카드는 삽시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때는 좁은 공동체의 믿을 수 있는 일원들의 전유물이었던 신뢰의 네트워크에 이제는 누구든 접속할 수 있었다. 이는 엄청난 문화적 변화였다. 은행 지배인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대출을 부탁하고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에든 돈을 쓸 수 있었고 내킬 때까지 언제든 지불을 미룰 수 있었다. 물론 20~30%의 이자를 내는 것에 부담이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러나 별다른 노력 없이도 바로 끌어 쓸 수 있는 신용이 우리의 심리에도 이상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몇년 전, MIT의 연구자 드레이즌 프렐렉과 던컨 시미스터는 신용카드가 우리의 소비습관을 보다 느슨하게 만든 것인지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이들은 실험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인기 스포츠 경기의 표를 경매로 구입하게 했다. 이 표는 비싼 것이었지만 정확히 얼마나 비싼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한 그룹은 현금으로 지불을 하게 했다. 다른 그룹은 오직 신용카드로만 표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그룹이 현금 결제 그룹에 비해 훨씬 더 비싼 가격을 부른 것이었다. 특히 인기가 많은 경기의 경우 현금 그룹보다 두 배 이상을 결제했다.


현금의 죽음?


이는 중요한 문제다. 이미 몇몇 부문에서는 현금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상점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의 단 20%만이 현금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체 소비액의 1%만이 현금 결제다. 현금은 받지 않고 카드만 받는다는 이런 안내문이 스웨덴에서는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1970년에 나온 뱅크아메리카드의 광고 슬로건은 "돈처럼 여기세요"였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거래에서 현금이 통하지 않는다. 비행기 표나 렌터카를 대여할 때, 호텔에 묵을 때 모두 당신의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를 요구한다. 스웨덴에서는 심지어 카페, 술집, 때때로는 시장 가판대에서도 카드를 요구한다. 현명하게 사용하면 신용카드는 우리의 돈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돈을 쓰기가 너무 쉬워졌다는 데 있다. 신용카드의 특징인 신용부채 누적액은 미국에서 약 8600억 달러(한화 약 940조 원)에 달한다. 이는 미국 성인들 한 명당 2500달러(한화 약 270만 원)가 넘는 금액이다. 실질적으로 지난 50년 동안 400배가 늘어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수행한 최근 연구는 (신용카드로 인해 쉬이 누적될 수 있는) 가계부채가 국가경제에 혈당의 급증과 맞먹는다고 결론지었다. 단기적인 성장에는 좋다. 그러나 3~5년 이상의 시점에서 볼 때는 나쁘다. 금융위기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 걱정한다.


'신용카드 회사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신용을 제공한다'는 명제에 대해 미국인 10명 중 9명은 동의했다. 대부분은 강하게 동의한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의 신용카드에 대해 생각하라고 하면 그들은 만족한다. 우리는 서로가 이 강력한 금융도구를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믿고 있다.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Posted by G.O.S
: